한국어 / C1
토끼의 눈
파도 아래 물고기 나라가 온통 시름에 잠겼다. 지느러미와 꼬리를 지닌 생물이라면 누구나 근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의 왕이 입 안의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단은 왕이 궁전 밖을 헤엄치던 어느 날이었다. 물속에 무언가 매달려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왕은 곧장 그것을 삼키려 들었다. 그러나 먹이 속에 감춰져 있던 것은 바다 위 어부들이 드리운 낚싯바늘이었다. 완전히 삼키는 일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날카로운 바늘이 아가미에 깊이 걸리고 말았다.
왕이 몸을 홱 젖히며 빠져나오자 낚싯줄은 끊어졌다. 그렇다고 쇠붙이까지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었다. 입 안에 남은 바늘 때문에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급기야 열까지 올랐다. 이제 어떻게 그 이물질을 제거하고 폐하의 건강을 회복시킬 것인가가 온 나라의 문제가 되었다.
바다에서 지혜와 의술로 이름난 이들이 모두 궁전으로 소집되었다. 거북이에서 자그마한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또 작은 가시고기에서 거대한 고래에 이르기까지 빠지는 이가 없었다. 의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깜박이며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왕의 병을 놓고 진지한 논의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박식하고 경험이 풍부하다고 인정받는 이는 거북이였다. 그는 여러 차례 왕의 맥을 짚고 목 안을 들여다보았다. 충분히 살펴보기도 전에 병세를 단정하거나 처방부터 내리지는 않았다. 마침내 비늘과 껍데기를 두른 동료 의사들과 협의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토끼의 눈으로 따뜻한 약을 만들어 목에 붙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약이라야 바늘을 느슨하게 하여 빼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거북이는 해변으로 나가 토끼 한 마리를 바닷속 왕국에 초대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목적은 그 눈으로 약을 만들어 왕의 목에 대는 것이었지만, 초대받을 손님에게 그런 사정을 알릴 생각은 없었다.
높은 언덕 아래 해변에 도착한 거북이는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토끼 한 마리가 굴에서 나와 숲 가장자리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거북이는 모래밭을 뒤뚱거리며 건너고, 힘겹게 언덕을 기어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아침 인사를 건넬 만큼의 여유는 남아 있었다. 토끼도 정중하게 인사를 돌려주었다.
“날이 덥군요.”
거북이는 손수건을 꺼내 단단한 이마를 닦고, 발톱 사이에 낀 모래를 털어 냈다. 토끼는 이토록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으니 물 밖으로 나온 보람이 있지 않으냐고 했다. 한국처럼 아름다운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느냐며 산과 강, 바닷가와 숲, 갖가지 꽃을 차례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마냥 듣다가는 찾아온 용건마저 잊을 판이었다. 잔인한 낚싯바늘에 고통받는 왕을 떠올린 거북이는 토끼의 말을 가로막았다.
“물론 이곳 풍경도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바닷속 세상의 보석과 나무, 꽃과 향기, 그 모든 아름다움에 비할 수는 없지요.”
토끼는 귀를 쫑긋 세웠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바닷속에는 흔한 물고기와 해초 정도만 있는 줄 알았다. 더구나 그런 것들이 썩어 해변에 떠밀려 왔을 때의 냄새라면, 토끼도 잘 알고 있었다. 향기롭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물 아래에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해 달라고 청했다.
거북이는 깊은 바다 밑의 경이로운 산과 골짜기를 묘사했다. 빨강, 주황, 초록, 파랑, 흰색의 희귀한 수초가 자라고, 금과 은으로 된 나무 사이에는 온갖 빛깔과 향기를 지닌 꽃이 피어 있다고 했다. 토끼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자, 거북이는 맛있는 음식과 음료, 음악과 춤, 아름다운 시녀들까지 덧붙였다.
“그러니 함께 가서 귀한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왕께서 직접 당신을 초대하라고 보내셨습니다.”
토끼는 자신도 정말 갈 수 있느냐고 기뻐하며 물었다. 거북이는 지금 당장 등에 오르면 데려가겠다고 했다. 토끼는 달리고 거북이는 뒤뚱거리며 물가로 내려갔다. 출발하기 전, 거북이는 앞쪽 등껍질을 단단히 붙잡으라고 일렀다. 이제 물속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둘은 푸른 파도 아래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 마침내 왕의 궁전에 이르렀다. 토끼는 거북이의 묘사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눈앞에 펼쳐진 빛깔과 찬란한 보석들이 모두 그 말대로였다.
거북이는 토끼를 몇몇 왕자와 공주에게 소개했다. 그들이 귀한 손님에게 궁전의 명소와 보물을 안내하는 동안, 거북이는 의사들의 회의에 참석하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고했다.
한편 토끼는 세상에 이보다 멋진 곳이 있을까 생각하며 구경을 즐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오가는 말을 듣고, 자신을 초대한 진짜 까닭을 알아 버렸다. 이토록 융숭한 대접을 하는 것은 결국 그의 두 눈을 빼내기 위해서였다.
눈을 잃는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토끼는 누구에게도 두려움이나 결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력을 지키고 목숨을 건지려면, 자신을 데려온 거북이에게 한 수 위의 꾀를 써야 했다. 그는 속으로 탈출 방법을 마련했다.
왕실의 처형 담당자들이 찾아와,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눈을 내놓아야 한다고 예의를 갖추어 통보했다. 토끼는 그들의 공손함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태도로 유감을 표했다.
“폐하께서 편찮으시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즉시 도움을 드리지 못하는 사정을 부디 용서하십시오. 지금 제 머리에 들어 있는 눈은 본래의 눈이 아니라 수정으로 만든 것입니다. 바닷물이 시력을 상하게 할까 염려되어, 진짜 눈은 꺼내 모래 속에 묻어 두고 왔습니다. 먼지가 심하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저는 이런 수정 눈을 사용하곤 합니다.”
왕실 관리들의 얼굴에 실망이 번졌다. 치료를 기다리는 왕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한단 말인가. 토끼는 그들의 난처함을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듯 말을 보탰다.
“그렇게 낙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바닷가에 잠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시면, 묻어 둔 눈을 파내 가져오겠습니다. 약을 만드실 시간에는 늦지 않도록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토끼는 다시 거북이의 등에 올라탔다. 오래지 않아 둘은 물 밖으로 나와 육지에 닿았다. 토끼는 곧바로 거북이의 등에서 번개처럼 뛰어내렸다. 곧장 숲으로 내달리는 그의 뒤로 솜털 같은 흰 꼬리만 보였다. 잠시 후에는 그 꼬리마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거북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 자신이 토끼에게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갔음을 보고해야 했다.
English summary · includes the ending
The king of the fishes swallows bait and gets a fishing hook stuck in his gills. The sea’s doctors decide that a warm poultice made from a rabbit’s eyes is needed to remove it.
A turtle goes ashore and persuades a rabbit to visit the underwater palace by describing its beauty and pleasures. The palace really is magnificent, and the rabbit enjoys being shown around.
Then he overhears why he has been invited. When officials ask for his eyes, he politely claims that he left his real ones buried in the sand to protect them from seawater. The eyes he is wearing, he says, are made of crystal. He offers to fetch the real pair, and the turtle carries him back to shore.
As soon as they reach land, the rabbit jumps off and escapes into the forest. The turtle returns in tears to report that he has been outwitted.
Adapted for Lejrbår from the credited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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