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 C1

호랑이를 속인 토끼

Short story

강원도 산속에 흰수염이라는 거대한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누르스름한 털에 줄무늬가 선명한 그는 한반도에서 가장 거만한 호랑이였습니다. 산짐승 가운데 그보다 눈빛이 매섭거나, 꼬리가 길거나, 발톱이 날카롭거나, 줄무늬가 넓은 동물은 없었습니다. 소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 것도, 마을의 개들을 모조리 상대하는 것도 문제없었습니다. 사냥꾼이라 해도 총을 들고 있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송아지와 돼지는 그저 가벼운 간식 정도로 여겼습니다.

외양간 지붕을 뜯거나 가로막힌 나무를 부수고 들어가 돼지를 잡아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우고, 다른 한 마리는 등에 짊어진 채 먼 산속 굴까지 가져가 새끼들에게 먹였습니다.

흰수염이 특히 자부심을 품은 까닭은 산의 신을 섬기는 부하라는 데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사당을 지어 모시는 신이었습니다. 산의 신은 필요하면 자신이 다스리는 곳의 호랑이들을 모두 불러 모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호랑이 등에 올라타 구름을 타고 가거나, 적과 싸우러 나서기도 했습니다. 호랑이와 표범이 심부름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크고 빠른 호랑이들만 골라 중요한 일을 맡겼습니다.

흰수염에게 특별히 맡겨진 임무 하나는 고갯길의 사당들을 날마다 찾아가, 신에게 바치는 물건이 끊이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의 신과 호랑이를 무서워하던 사람들은 돌이며 헝겊이며 쇳조각을 쌓아 놓거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바쳤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이 노하여 밤중에 호랑이를 내려보내고, 호랑이는 마을을 돌며 가축은 물론 사람까지 잡아먹으리라 믿었습니다. 사냥꾼이 총을 들고 나설 무렵이면, 호랑이들은 이미 멀리 산속 굴로 돌아간 뒤였습니다.

흰수염은 거만할 뿐 아니라 약삭빠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온갖 짐승을 잡아먹으면서도 사람들의 덫은 모조리 피하고 총알마저 비껴 왔습니다. 이제 어떤 적이든 비웃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힘도 약하고 날카로운 발톱이나 발굽도 없는 작은 동물에게 속아 넘어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을 근처 언덕에 굴을 파고 사는 토끼는, 흰수염의 먹이가 된 돼지와 당나귀의 비명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동안은 몹시 조심한 덕에 호랑이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날, 전날부터 굶어 지치고 기운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호랑이와 정면으로 마주쳤습니다. 토끼가 얼어붙은 강을 건너던 바로 그때, 굴에서 가까운 강가의 바위 뒤로부터 흰수염이 뛰쳐나온 것입니다. 호랑이는 커다란 초록빛 눈으로 토끼를 노려보며 공포에 질리게 하려 했습니다.

토끼는 호랑이가 먹잇감을 잡으면 먼저 가지고 놀거나 괴롭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왔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몸을 떨거나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만남이 언젠가 닥칠 것을 오래전부터 예상했으므로, 호랑이를 방심하게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작은 짐승을 곧 저녁으로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배가 고프다. 지금 당장 너를 잡아먹겠다.”

“저 때문에 수고하실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작고 말라서 한입거리도 안 됩니다. 제 말만 들어 주시면 훌륭한 식사를 마련하겠습니다. 산으로 올라가 동물들을 바로 발앞까지 몰아다 드리지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그대로 해 주셔야 합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호랑이는 기뻐서 입을 벌렸습니다. 붉고 깊은 입속에는 못처럼 커다란 흰 이빨이 드러났고, 길게 내민 혀에는 가시 같은 돌기가 가득했습니다. 토끼는 호랑이의 입속을 들여다본 것이 처음이어서 몹시 무서웠지만,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호랑이가 그렇게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미는 것은 푸짐한 먹이를 기대하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네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

“산의 주인님을 섬길 수만 있다면 저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우선 여기 얼음 위에 누워 눈을 감으십시오. 제가 마른 풀로 주위에 원을 만들고, 그 둘레를 돌면서 동물들을 몰아오겠습니다. 단, 눈을 뜨시면 신기한 힘이 사라지니 꼭 감고 계셔야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무슨 소리가 나거나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제가 말씀드릴 때까지 눈을 뜨지 마십시오.”

흰수염은 하루 종일 숲을 돌아다니고 돼지우리 주위를 기웃거렸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했으므로, 기다리는 동안 한숨 자 두기로 했습니다. 촛불을 훅 불어 끄는 사이만큼이나 짧은 순간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토끼는 부지런히 마른 풀을 뽑아 호랑이 몸에 바짝 붙여 쌓았습니다. 커다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흐뭇해진 토끼는, 풀로 두꺼운 원이 만들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런 다음 불을 붙였습니다. 불길이 높이 솟아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광경을 지켜보려고 멀리 달아났습니다.

타닥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흰수염은 하품을 하고 앞발로 눈을 비볐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해하는데, 토끼가 외쳤습니다.

“잠깐만요! 약속을 지키셔야지요!”

그러면서 토끼는 언덕을 따라 더욱 멀리 달아났습니다.

붉은 불길이 사방에서 혀처럼 치솟자, 호랑이는 “이 나쁜 녀석!” 하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살아서 빠져나오려면 높이 뛰어 불길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앞발이 데어 절뚝거렸습니다. 털은 심하게 그슬려, 자랑하던 긴 털도 멋진 모습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흰수염이 집으로 돌아오자 다른 호랑이들은 그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 뒤로 흰수염은 예전의 높은 자리를 잃었습니다. 산의 신이 그렇게 어리석은 부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nglish summary · includes the ending

White Whiskers is a proud, powerful tiger who works for the Mountain Spirit. One winter day, he meets a hungry rabbit on a frozen river and threatens to eat it. The rabbit hides its fear and promises a much larger meal by driving other animals towards him.

It tells the tiger to lie down, close his eyes, and stay still while it makes a circle of dry grass. If he opens his eyes, it says, the special power will fail. Tired and hungry, the tiger agrees and falls asleep.

The rabbit piles grass around him, sets it alight, and escapes. When the tiger wakes at the crackling sound, the rabbit calls out that he must keep his promise.

The tiger finally jumps clear of the flames, but burns a paw and badly damages his beautiful fur. Other tigers laugh at him. The Mountain Spirit no longer trusts such a foolish servant, and the tiger loses his high position.

Adapted for Lejrbål from the credited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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