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 B2

호랑이를 속인 토끼

Short story

강원도 산속에 흰수염이라는 거대한 호랑이가 살았습니다. 날카로운 발톱과 길고 탐스러운 꼬리, 넓은 줄무늬를 자랑하는 그는 온 나라에서 가장 거만한 호랑이였습니다. 소를 쓰러뜨리거나 마을의 개들을 상대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총을 든 사람이 아니라면 사냥꾼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흰수염이 그토록 우쭐대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산을 다스리는 신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산의 신은 크고 빠른 호랑이를 골라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흰수염에게 맡긴 일 가운데 하나는 산길의 작은 사당을 날마다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신에게 바치는 물건이나 음식이 끊이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신과 호랑이가 무서워 돌이나 헝겊, 쇳조각, 음식까지 가져다 놓았습니다. 신이 화를 내면 밤중에 호랑이를 마을로 내려보낼지도 모른다고 믿었습니다. 흰수염은 오랫동안 여러 동물을 잡아먹으면서도 덫과 총알을 피해 왔습니다. 이제 자신을 이길 상대는 없다고 여겼습니다.

마을 근처 언덕에는 토끼가 한 마리 살았습니다. 그는 호랑이에게 잡힌 돼지와 당나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조심스럽게 피해 다닌 덕분에 여태 무사했지만, 어느 겨울날 마침내 호랑이와 마주쳤습니다.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지친 채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가, 강가의 바위 뒤에서 튀어나온 흰수염과 맞닥뜨린 것입니다.

토끼는 호랑이가 먹잇감을 곧바로 먹지 않고 먼저 괴롭히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목숨이 끝나려나 싶었지만,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고, 상대가 방심하게 만들 준비를 해 두었던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 당장 너를 먹어야겠다.”

호랑이의 말에 토끼가 대답했습니다.

“저처럼 작고 마른 것을 드셔 봐야 한입거리도 안 됩니다. 제 말을 들어 주시면 훨씬 푸짐한 식사를 마련하겠습니다. 산으로 올라가 동물들을 바로 발앞까지 몰아오지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꼭 해 주셔야 합니다.”

호랑이는 실컷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입을 크게 벌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거친 돌기가 돋은 혀로 입맛을 다셨습니다. 호랑이의 입속을 처음 들여다본 토끼는 몹시 무서웠지만, 겉으로는 태연했습니다.

“네 말대로 하겠다.”

“산의 주인님을 돕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선 여기 얼음 위에 누워 눈을 감으십시오. 제가 마른 풀로 둘레에 원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면서 동물들을 몰아오겠습니다. 눈을 뜨시면 신기한 힘이 사라져 버립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소리가 나거나 무언가 타닥거려도 제가 말하기 전에는 눈을 뜨지 마십시오.”

호랑이는 온종일 숲을 헤매고 돼지우리를 기웃거렸지만 먹이를 얻지 못해 배도 고프고 몸도 피곤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잠깐 눈을 붙이기로 하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러자 토끼는 부지런히 마른 풀을 뽑아 호랑이 몸 가까이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큰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풀을 모아 두꺼운 원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풀에 불을 붙였습니다. 불길이 높이 치솟자, 토끼는 그 광경을 지켜볼 수 있는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타닥타닥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 호랑이는 하품을 하며 앞발로 눈을 비볐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토끼가 소리쳤습니다.

“약속을 지키셔야지요! 아직 눈을 뜨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토끼는 언덕 위로 더 멀리 뛰어갔습니다.

붉은 불길이 사방에서 올라오자 호랑이는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알고 으르렁거렸습니다. 목숨을 건지려면 높이 뛰어 불길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우 빠져나왔지만 한쪽 앞발을 데어 절뚝거렸고, 털도 심하게 그슬려 길고 멋지던 털과 자랑스러운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흰수염을 보고 다른 호랑이들은 비웃었습니다. 산의 신도 그런 어리석은 부하를 더는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이 세다고 뽐내던 흰수염은, 그 뒤로 남보다 뒤처진 자리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English summary · includes the ending

White Whiskers is a proud, powerful tiger who works for the Mountain Spirit. One winter day, he meets a hungry rabbit on a frozen river and threatens to eat it. The rabbit hides its fear and promises a much larger meal by driving other animals towards him.

It tells the tiger to lie down, close his eyes, and stay still while it makes a circle of dry grass. If he opens his eyes, it says, the special power will fail. Tired and hungry, the tiger agrees and falls asleep.

The rabbit piles grass around him, sets it alight, and escapes. When the tiger wakes at the crackling sound, the rabbit calls out that he must keep his promise.

The tiger finally jumps clear of the flames, but burns a paw and badly damages his beautiful fur. Other tigers laugh at him. The Mountain Spirit no longer trusts such a foolish servant, and the tiger loses his high position.

Adapted for Lejrbål from the credited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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